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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야기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난 과정에 대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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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역사적으로 앙숙관계에 있는 영국과 프랑스는 영원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한 채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793년 두 나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프랑스의 시민혁명에 대해 반감을 갖은 왕권 국가들은 동맹을 맺어 영국이 주도하는 연합군과 벌어진 전쟁이다.  

나폴레옹 전쟁의 전개 과정

프랑스 시민들에 의해 국왕의 목을 잘려나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을 겪고 나서야 프랑스 공화국 정부가 탄생하였다. 혁명의 결과로 공화정을 수립한 프랑스와 그와 달리 왕권 체제를 유지해야 했던 유럽 열강(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영국, 러시아 등) 간에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유럽의 정치적인 국제질서는 불안감이 생겨났다. 

유럽 열강들의 동맹 (대 프랑스 동맹) 

프랑스 국왕을 잔혹하게 처단한 프랑스 시민들을 살해범이라 부르며 혁명 프랑스의 싹이 자라나기 전에 제거하고 동시에 혁명 프랑스의 치솟는 야심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유럽 열강국들은 대 프랑스 동맹을 맺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목적을 추구하는 "혁명 프랑스 VS 구체제 유럽 열강"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나폴레옹 전쟁의 시작은 프랑스혁명을 방위하는 목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변질되어 침략적인 성향으로 변하더니 결국 다른 유럽 국가들과 60회에 걸친 많은 전쟁을 치르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백년전쟁(1337년~1453년)과 연속되는 전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수 백 년 걸친 오래된 싸움의 최종전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폴레옹 전쟁을  2차 백년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혁명 프랑스를 이끌며 유럽 열강들(대 프랑스 동맹군)과 전쟁을 통해서 이룬 성과를 높이 평가받아 황제의 자리까지 올랐다. 절대왕권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 열강국들과 달리 나폴레옹은 국민이 주권자이고, 국민의 뜻에 따른 통치권의 행사를 주장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궁극적인 적으로 지목하고 영국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 대륙을 프랑스혁명 정신으로 통합시킴으로써 오늘날의 유럽공동체 같은 대륙 체제를 구성하고자 했다. 프랑스혁명으로 시작된 내셔널리즘이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서 유럽 대륙 각지에 전파되자 오히려 유럽 각국에는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애국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나폴레옹에게 침략받은 유럽 제국은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을 결성하여 항전을 이어갔다. 19세기 유럽 역사는 자유주의, 민주적 제도, 입헌정치의 수립,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자유 평등사상이 전파되었고 결과적으로 자유주의의 확대는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요구하는 국민주의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러시아 원정

나폴레옹은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대륙 봉쇄령을 발령하였다. 이로 인해 다른 유럽 국가들과 영국 간 교역을 모두 금지시켰다. 하지만 러시아는 대륙 봉쇄령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륙 체제에서 탈퇴를 하여 영국과 무역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나폴레옹에게 러시아를 공격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결국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어 러시아 침공에 나섰고 프랑스의 공격을 피해 러시아군은 퇴각하며 지나는 곳마다 불을 질렀다. 이는 군수품이 부족했던 프랑스군이 현지에서 식량과 군수 물자를 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프랑스군의 러시아 침공은 모스크바까지는 손쉽게 계획대로 진행되는 듯하였으나 문제는 러시아군의 작전에 휘말려 굶주림과 추운 겨울을 극복할 대비책이 미흡해 결국 철수를 감행하였다. 전투의지를 잃고 무기력에 빠진 프랑스군은 러시아의 공격에 패배하였다. 그 결과 러시아 원정에 나선 프랑스의 60만 대군은 40만 명이 사망과 붙잡힌 포로의 수가 10만 명에 달하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의 소식은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고 프랑스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봉기하기 시작했고 이는 나폴레옹의 몰락에 결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중에도 대 프랑스 동맹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승전국이 되었다. 이로 인해 영국은 유럽의 해양강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고 나아가 세계 전역에 식민지 확보를 통해서 식민지에서 생산되는 많은 자원을 획득함으로써 영국의 경제는 더욱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영국의 발전은 대영제국의 기틀과 산업혁명을 이끄는 데도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후 자유주의 사상이 영국에도 영향을 미침으로서 차티스트 운동과 선거법 개정을 불러왔다. 나폴레옹 전쟁 전 유럽의 군사적 형태는 절대주의 왕국을 중심으로 용병을 고용하는 형태로 군대를 운용되었지만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공화국 정부를 방어해야 한다는 의식을 높아져 용병제가 아닌 국민들이 중심이 되는 군대 형태로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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