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은 1789년 7월 14일 ~ 1794년 7월 28일 사이에 부르주아 계층을 중심으로 전 국민이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찾기 위해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상황은 상업 발달과 함께 급격한 인구증가, 이런 환경은 부르주아라는 신흥 계층이 성장시켰다. 상품화폐경제의 보급을 기반으로 성장한 신흥 계층 부르주아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기존 봉건귀족의 권력을 약화시켰고 이로 인해 세력을 잃어가던 봉건귀족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신흥 세력인 부르주아에 대항하였다.
혁명의 발생 배경
이런 상황에 놓인 18세기 프랑스의 모습, 즉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기 이전의 프랑스 왕국의 체제를 유지하는 시대적 상황을 통칭하여 앙시앵 레짐이라고 부른다. 앙시앵 레짐은 프랑스어로 옛 체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사회제도가 현실의 관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구시대적 유물을 의미한다. 프랑스혁명 전후 프랑스 사회의 문란했던 조세제도와 혼란스러운 행정 및 사법 질서 그리고 점차 약해지는 프랑스의 왕권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었다.
봉건적 신분제의 폐해
당시 프랑스는 봉건적인 피라미드형 신분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신분제의 구조는 제1 신분 성직자, 제2 신분 귀족, 그리고 국민의 대다수가 포함된 제3 신분 등 3가지 신분이 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듯했지만 각 신분제도의 경계 사이에는 계급 분화가 매우 복잡하게 일어났고 부르주아나 농민들 사이에서도 경제적, 사회적, 지적 격차가 크게 발생했다. 이러한 내부 균열의 갈등을 비롯하여 불안정한 사회질서는 프랑스 대혁명의 조짐을 암시하고 있던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특징적을 보이며 핵심적인 계층으로 부각된 것이 바로 제3 신분에 속한 부르주아였다. 부유한 상층 부르주아들은 막강한 경제력을 내세워 신분과 관직을 구매함으로써 귀족을 압도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나 능력과는 관계없이 스스로 신분이 여전히 3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부르주아는 현실을 따르지 못하는 제도의 모순점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고 이러한 부르주아의 의식은 프랑스혁명을 일으키는 동력이 되었다.
민중의 궁핍한 삶
프랑스 절대왕정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힘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민중의 직접적인 참여였다. 이때 민중이 나서게 된 계기는 궁핍한 삶이었다. 프랑스 구시대적 봉건제도 아래 놓인 농민들은 영주에게 바치는 세금뿐만 아니라 절대주의 왕권 체제에 부담하는 세금으로 이중고에 시달렸다. 당시에 극심했던 부정부패로 인해 농민들은 수입의 80~90퍼센트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국왕에게 바치는 국세는 모든 국민들에게 형식적으로 부과하게 하였을 뿐 사실상 특권 신분들은 면제 혜택을 받고 농민들이 이를 대신해 모든 부담을 책임지게 하는 차별적 대우를 하였다. 농민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를 세금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사실상의 원인이 앙시앵 레짐이라는 국가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였다. 지방교회는 무지한 농민들에게 교육을 통해 계몽사상을 전파함으로써 부르주아 세력이 주도한 프랑스혁명이 훗날 농민들에게까지 확대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마련했다.
통치체제의 이중성과 모순
당시 프랑스는 체제의 이중성과 행정과 사법제도의 모순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왕국의 통치조직은 구시대적 봉건제도 아래 절대왕정을 덧입히는 형태를 갖춰 체계가 바르지 않고 오히려 기능이 중복되는 문제가 있었다. 사법제도는 고등법원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귀족들이 왕권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왕권은 점차 약해져 혼란이 가중되었다.
계몽사상의 출현
앙시앵 레짐이라는 불합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계몽주의 철학은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이 프랑스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라 할 수 없지만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다양하게 분화되어 흩어진 계층들을 하나로 단결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계몽주의 사상은 18세기 주된 현상이며 과거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구시대의 권위, 특권, 제도에 항거하고 인간의 이성과 인류의 무한한 발전에 대한 믿음을 통해 민중이 자발적으로 나서 인간생활의 진보와 개선을 이루고자 힘썼다. 이성의 눈으로 바라본 18세기 프랑스의 모습은 모순으로 가득 찬 시대였다. 비과학적이고, 정치제도는 불합리한 전통과 관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런 사회 현실에 대항하여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사회를 이루고자 하였다.
계몽주의 사상가
이 당시 프랑스에는 유명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있었는데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이 대표적이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성과 진보에 대한 공통된 신념이 있었지만, 그 구체적으로 개혁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각기 의견의 차이도 있었다. 몽테스키외는 절대군주정치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공화제든 군주제든 그것에 앞서 국가의 타락을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권력을 분산과 분산된 권력 간에 서로 견제하는 삼권분립론을 주장하였다. 볼테르 역시 군주제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대신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제를 예견하여 특권계층을 비판하며 군주들에게 위로부터 시작되는 근대화를 기대하였다. 그렇다고 무산계급을 옹호하지는 않았지만 일반 민중들은 정치에 참여하기 힘든 낮은 차원의 존재로 인식하였다. 그에 비해 사회계약설 주장한 루소는 급진적인 계몽사상가로서 모든 국민의 평등을 주장하였는데, 사회계약설에 의하면 사회는 그 사회의 성립을 계약한 인민들에게 그 주권이 있으며 모든 국민은 천부 인권을 갖고, 반자연적 신분제는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하게 된다. 결국 루소는 정치권력을 민중에까지 확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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