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제국주의(군사 경제력 우위로 다른 국가를 침략하는 사상)로 인한 경제적 세력 확장이 가속화되면서 유럽 열강국들의 이익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날카롭게 대립하게 된다. 당시 유럽지역은 산업혁명이 불러온 과학 기술의 발달로 과거와 달리 더 빠른 발전 속도를 갖춤으로써 생산품을 판매하기 위한 식민지가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 강대국들은 서로 실속 있는 식민지를 찾기 위한 경쟁을 시작하였고 그 과정의 결과물로 발생한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개과정
1914년 6월 28일 11시 15분, 오스트리아 사라예보(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에서 19세의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남슬라브 민족주의)가 오스트리아에 항거하는 뜻을 품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였는데 이를 사라예보 사건이라고 한다. 세르비아는 1389년 오스만 튀르크에게 전쟁에서 패한 후 여러 강대국(러시아, 투르크 ,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 왔다. 1878년 투르크의 지배에서 독립을 이루었으나 또다시 오스트리아에 의해 보시니아-헤르체고비나를 병합당하였고 이런 오랜 외세의 지배 속에서 세르비아인들은 민족독립의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특히 6월 28일은 1389년 오스만튀르크에 참혹한 패배를 당한 세르비아에게 있어 국가적인 수치의 날이었다. 결국 사라예보 암살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후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에 불씨를 붙였다.
유럽의 분열 : 삼국 협상과 삼국동맹
제1차 세계 대전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여러 원인 중에 그 시작은 유럽 강대국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동맹관계에 있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삼국 협상 세력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3국이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체결한 삼국동맹세력이 유럽 열강국 사이에서 복잡한 군사 동맹을 맺어 대립함으로써 긴장을 초래하였고 결국 이는 전쟁의 불씨를 붙였다.
전쟁의 진행
남동부 유럽지역에서 작은 분쟁으로 시작하였지만 이 분쟁이 결국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유럽 강대국들 간의 대규모 글로벌 전쟁으로 확대시켰다. 제1차 세계 대전은 1914년~1918년 사이에 30개 이상의 국가들이 전쟁에 참전하였다. 자원이나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6,500만 명이 이상이었고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민간인들도 결국 다양한 산업전선에 뛰어들어 전쟁에 기여하였다. 최종적인 전쟁에서의 승패는 대중의 지지를 통해 결정이 났고 일부 국가들은 국민들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전의를 상실해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없게 되자 결국 항복하였다. 공식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은 1918년까지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터키 등 중앙 열강국들과 프랑스,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미국 등 연합군의 대결이었다. 결국 중앙 열강국들의 패배로 끝이 났지만 전쟁이 남긴 것은 끔찍한 대학살과 인류의 파괴라는 전례 없는 참혹한 결과를 남겼다.
전쟁의 결과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민간인을 포함한 약 1,600만 명 이상이 죽음을 당하였고 생존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부상과 전쟁의 공포로 인한 트라우마 등 수많은 피해를 입었다. 침략군은 민간인에 대한 잔인하고 참혹한 행위를 통해서 적국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대중의 지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학살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사회적, 정치적인 지형을 변화 외에도 계급과 성별의 변화를 초래했으며 이후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오스만 제국을 붕괴시켰다.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도 패배한 중앙 강대국 모두 황폐화된 국가를 재건하는데 많은 비용을 들었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터키 등의 몰락을 비롯해 지정학적으로 20세기 역사에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은 유럽 사회를 다시 불안정하게 만들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는 토대를 만들었다.
베르사유 조약
전쟁이 종료된 후 전승국과 패전국 사이에서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였고 조약에 따른 국제 규칙과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체제가 성립하였다. 이 조약으로 인해 독일은 해외 식민지와 독일어권 영토 일부분을 잃었고 해군과 공군의 포기와 육군 병력 10만 명으로 제한하는 압박과 천문학적 액수의 전쟁배상금을 지불하는 등 엄청난 제재를 받게 되었다. 독일인이 갖게 된 불만을 품게 되고 훗날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독일인들의 적개심은 나치즘을 등장시키게 된다.
무기와 군사 기술의 발전
서로 전쟁에서 우월한 지위를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였고 의학, 화학, 통신, 제조 등 여러 분야에서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자동기관총을 비롯해 전차, 항공기, 잠수함의 등장은 과거 지상에 국한된 전투에서 벗어나 하늘과 바다까지 전장의 범위를 확대하였고 새로운 군사 기술은 대학살 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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