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5년~1291년 사이에 서유럽 지역의 그리스도 교도들이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고자 총 9차례에 걸쳐 일어난 전쟁으로 아랍에서는 프랑크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전쟁에서 싸운 기사들의 몸에 십자가 표시가 있었기에 이 원정을 십자군 전쟁이라고 하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교도 간 싸움이라는 점에서 종교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의 전개과정
1071년 동로마 황제 로마노스 4세가 셀주크의 튀르크족에게 패배로 인해 비잔틴제국의 핵심지역인 아나톨리아 지역(현 터키지역)을 빼앗긴 후 알렉시오스 1세가 황제로 즉위하자 잃어버린 영토 회복을 위해 교황에게 군대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이를 계기로 분리되었던 동서교회의 통합을 목적으로 공의회 선언하에 1095년 11월 클레르몽 공의회를 가지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차후 200년간 9차례에 걸쳐 십자군을 파견하게 된다.
성지 회복
로마제국 시대의 예루살렘은 모두 기독교인이 거주하였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레반트 지역은 기독교의 핵심지역이었다. 7세기에 접어들어 이슬람 세력의 성장과 팽창정책으로 예루살렘은 637년 이슬람 세력에 흡수되었고 십자군 전쟁이 일어난 11세기 이전까지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은 대부분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청의 입장에서는 이슬람의 이교도들을 물리치고 성지 탈환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인구증가로 인한 대외 팽창
중세 유럽의 경우 인구 증가율이 상당히 높았는데 당시 농업기술이 발전하기 이전 시기라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생산량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에 지배층에서 인구를 감소시킬 방안을 꾀하였고 영주 간 소규모의 전투를 통해 적정 인구수를 유지하려 하자 교황청에서는 내부에서 집안싸움을 하지 말고 차라리 외부로 나가서 다투라는 입장 표명해 결국 11세기, 교황 우르바노 2세에 의해 성지 탈환을 명분으로 한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결국 십자군 전쟁은 교회, 즉 기독교 세력의 확장과 교황청의 영향력 확대가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로 분리되어 있는 교회의 갈등 탓에 상호 간의 경쟁의식이 강하였는데 카노사의 굴욕사건 이후로 높아진 교황의 권력 때문에 많은 봉건영주들이 어쩔 수 없이 이에 따라 군사를 집결하여 동방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기독교 세력의 확대
십자군 전쟁은 11c 말 ~ 13c 말 사이에 서유럽 지역의 그리스도 교도들이 성지 탈환을 하기 위한 원정으로 이 전쟁에 참여한 군사를 이른바 십자군이라 부른다. 십자군의 의미는 당시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의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의 시작점은 종교적 요인에 의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유일신을 섬긴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서로 배척하기 위한 싸움이라는 점에서도 종교전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종교운동이라는 목적 외 복합적인 이해관계가 있었다. 새로운 영토 개척을 통한 봉건영주와 기사의 야망, 경제적 부를 축척하기 위한 상인의 욕망, 봉건사회가 만들어 낸 무거운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은 농민의 희망과 같이 각기 저마다 자신만의 목적을 갖고 십자군 원정에 임했다. 당시 서유럽 사회는 대체로 봉건사회의 기초가 확립되었고 상업과 도시의 발달이 적정 수준에 이루어져 있어서 대식민 활동 등을 통해 전진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십자군도 정치적 식민적 운동의 일환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성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 종교였던 것이다.
전쟁의 결과
결론적으로 십자군 전쟁은 실패한 전쟁이다. 여기서 실패란 목적이었던 성지 탈환을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적국 이슬람 세력을 더욱 단합하게 만드는 계기를 주었고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앞당기는 사건이 되었다. 이 전쟁의 명분을 제공했던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어 그 영향력을 잃었다. 9차례의 십자군 원정 중 1차를 제외하고 모든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대규모 영지를 기초로 농업경제를 오랫동안 버티고 있던 장원 경제가 붕괴되면서 더불어 기사의 권위도 떨어지면서 돈키호케 같은 소설이 등장하였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가장 이득을 얻은 세력은 베네치아 공화국과 제노바 공화국이다. 이 시기에는 도시가 발달하고 화폐경제가 활성화되었으며 상인들이 주류가 되어가는 시대가 되자 상업이 발달했던 베네치아 공화국과 제노바 공화국은 예루살렘으로 이동하기 위한 인력, 자원, 물자들이 필요하였고 이를 제공하면서 엄청난 이득을 챙겨갔다. 십자군 전쟁은 성지를 회복하고 기독교의 세력 확장을 위해 일으킨 전쟁이었지만 오히려 기독교의 신앙이 약화시키고 교회의 권위가 추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이와 함께 중세시대의 몰락을 불러와 르네상스로의 발전을 할 수 있게 된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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